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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골목 이야기 : 2화 - 건강침술원

이기종 명예회장 | 기사입력 2021/09/14 [14:52]

깡통골목 이야기 : 2화 - 건강침술원

이기종 명예회장 | 입력 : 2021/09/14 [14:52]

▲ 건강침술원 대표인 이기상 씨가 침 시술을 하고 있는 모습


서민들이 즐겨 찾던 상권이었던 깡통골목에 유달리 택시가 들어오는 때가 있다.
 
당시 온양관광호텔과 쌍벽을 이루던 문화호텔에 온양온천을 찾은 상당수 신혼부부들이 투숙하러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문화호텔은 세월의 흐름 속에 1970년 중반부터 우후죽순격으로 새롭게 밀려든 온양의 여관 문화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다 사라졌다.  
 
그런 부류의 택시 승객 말고는, 대부분 외지에서 맹인 이기상 씨가 운영하던 건강침술원(시민로405번길 6-5)을 찾는 경우였다.
 
이 선생은 지금은 한의사들이 독점한 침구자격증을 비롯해 안마자격증(공히 충남도지사 발급)을 당당히 보유하고, 담백하고 잔잔한 인술을 펼쳐 입소문을 타더니 전국에서 찾아오는 병자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 났다.
 
일침 치병의 침술사로 알려졌던 이 선생은 특히 진맥의 명인 이었는데 임신 초기의 임산부의 맥을 짚어보고 태아의 성별을 감별해내 수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비법 처방전을 한약방에 내려서 지은 탕약을, 산모가 먹으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태아 성별 교체도 가능했었다 하니 그의 명성이 팔도 사방으로 날렸던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실제로 동네 주민 한 사람도 내리 딸만 낳다가 세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탕약을 처방받아 갔고, 기다리던 사내 아이를 출산한 일이 있다.
 
안마에도 능통했던 이 선생은 호텔 VIP 손님들부터 시장통 할머니까지 그를 찾는 수 많은 이들의 혈을 터주며 그들에게 건강과 재활의 손길을 베풀었다. 
 
18일계 태동시부터 쭉 회장직을 맡아 온 그는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1년에 두번 정례적으로 떠나는 친목계 여행에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시각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들리는 소리, 풍겨나는 냄새, 만져지는 촉감을 통해 계원 누구보다도 폭 넓고 깊은 감수성을 보이며 낯 선 곳의 여행을 만끽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 것 같다.
 
한번은 풍랑이 심한 거문도, 백도 여행을 하는데 계원 모두는 작은 크기의 배를 타고 그 섬들을 찾아간다는 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길을 나섰다.
 
이윽고 부둣가에서 배로 출발하기 전 이 선생과 친분이 남다르고 장난기가 많았던 한 후배가 배 입구로 길 안내를 하다가, 갑자기 멈추어 "맛있는 회를 안사주면 배를 안태워준다"고 이 선생에게 생자를 부렸고, 이 선생으로부터 마지못한 약속을 받아내며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기도 잠시 본격적으로 거문도 백도 바닷길에 접어들자 사납고 맹렬한 파도에 배는 뒤집어 질 듯 기우뚱 거렸고, 탑승객들은 극심한 배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일행 몇 몇은 바닥에 쓰러져 배가 기울어지는 쪽으로 이리저리 데굴데굴 구르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아까 그 후배가 가장 처절한 소리를 내며 뒹굴고 있었다.
 
자! 이쯤이면 이 선생이 어쩌고 계신지 걱정 될 법도 한데, 정작 이 선생은 배 중앙부에 태연히 앉아 옆에서 들리는 벗들과 아우님들의 자지러지는 소리를 합창 삼아 거세게 뱃머리를 부딪치는 파도의 교향곡을 흡족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된 사실은 시각적 입력이 없으면 배멀미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하나의 감각기관이 상실되면 다른 감각이 특별히 발달해 그 장애를 메우고도 남을 만큼 고도화 된다는 점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빈약했던 우리 세대의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침술사로서, 굳굳한 삶을 멋지게 살다가신 기상 형님, 많이 많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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